2026-10-25 주일설교
Sungjin Jung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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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5 (주일) 설교 요약
본문
오바댜 1:10-16
제목
형제의 날
설교자
이성훈F 목사님 (1부예배)
핵심 주제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무너질 때, 형제 민족인 에돔은 유다의 고난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에돔은 직접 예루살렘을 무너뜨린 바벨론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구경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형제의 재앙을 보고도 멀리 서 있었던 에돔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형제가 어려움을 당할 때 방관하고, 속으로 기뻐하고, 옳은 말로 정죄하며, 결국 자신의 이익까지 챙기는 모습을 하나님은 모두 “포학”이라고 하십니다.
형제의 날, 곧 형제가 재앙을 당하는 날에 우리가 살아나기 위해 붙잡아야 할 고백은 세 가지입니다.
- 나도 ‘원 오브 뎀(one of them)’입니다.
- 그래도 내 형제입니다.
- 없어질 나를 살리셨습니다.
1. 나도 ‘원 오브 뎀(one of them)’입니다
본문
오바댜 1:10-11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에돔이 형제 야곱에게 한 행동을 “포학”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에돔이 처음부터 칼을 들고 유다를 공격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단지 멀리 서 있었습니다.
방관도 포학이 될 수 있습니다
에돔은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모습을 맞은편에서 구경했습니다.
직접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한 일이 아닙니다.”
“바벨론이 한 일입니다.”
“저희도 먹고살기 바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형제가 고난당하는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멀리 서 있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관심의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가까워도 마음으로 멀리 설 수 있습니다
에돔은 예루살렘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바로 맞은편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과 한집에 살고, 같은 목장에서 예배드리고,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마음으로는 아주 멀리 서 있을 수 있습니다.
- 사업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도 연락하지 않고
- 자녀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찾아가지 않고
- 부부가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경만 하고
- 아픈 가족에게 “병원 가”라는 말 한마디로 끝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내 입장에서는 단순한 거리 두기일 수 있지만, 고난받는 사람에게는 혼자 버려진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행동뿐 아니라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보십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네가 무엇을 했느냐?”
만 묻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이 힘들 때 너는 어디에 서 있었느냐?”
도 물으십니다.
형제가 무너질 때
- 곁에 있었는지
- 맞은편에 있었는지
- 멀리 서서 판단하고 있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는 마음
우리는 쉽게 생각합니다.
“나는 저 사람과 달라.”
“나는 저 정도는 아니야.”
“나는 저 사람과 같이 묶이기 싫어.”
그러나 하나님은
“너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의 종류와 정도가 다를 수는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은혜가 필요한 죄인입니다.
‘원 오브 뎀’을 인정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고백 중 하나는
“저도 똑같은 죄인입니다.”
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특히 내가 무시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같은 부류로 묶이기 싫은 사람이 있을 때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보면서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
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은혜가 없으면 똑같은 사람입니다.”
라고 인정하는 것이 복음의 출발입니다.
적용 질문
- 최근 가족이나 목장 식구의 어려움을 알고도 모른 체한 일은 무엇입니까?
- 그 사람 곁에 가면 내가 무엇을 손해 볼 것 같았습니까?
- 나는 누구와 같은 죄인이라고 인정하기가 가장 싫습니까?
- 내가 “원 오브 뎀”이 되기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2. 그래도 내 형제입니다
본문
오바댜 1:12-14
형제의 날은 즐거운 날이 아닙니다.
본문은 형제의 날을
“재앙의 날”
이라고 부릅니다.
바로 그때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드러납니다.
방관에서 가담으로
에돔의 행동은 단계적으로 깊어집니다.
처음에는 멀리 서서 바라봅니다.
그다음에는 형제의 패망을 보며 기뻐합니다.
그다음에는 입을 크게 벌려 조롱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 성문 안으로 들어가고
- 형제의 재물을 취하고
- 도망가는 사람의 길을 막고
- 남은 사람을 원수에게 넘깁니다.
죄는 어느 날 갑자기 큰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방관은 가담의 첫걸음입니다
형제의 어려움을 바라보며
“내 저럴 줄 알았어.”
“그렇게 살더니 결국 저렇게 됐네.”
“자기가 선택한 일이잖아.”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말 자체는 틀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맞는 말”을 하는 동안 고난받는 형제는 혼자 남습니다.
방관은 가담의 반대말이 아니라 가담의 첫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죄가 드러난 날에도 그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유다가 심판받고 있는 이유는 실제로 죄 때문이었습니다.
에돔의 판단이 사실관계만 놓고 보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죄 많은 유다를 여전히
“내 백성”
이라고 부르십니다.
죄가 드러난 날에도, 실패한 날에도, 망한 날에도,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고 부르신다면 우리도 그 사람을 함부로 버릴 수 없습니다.
그래도 내 형제입니다
형제가 잘하고 있을 때만 형제가 아닙니다.
- 실패했을 때
- 죄가 드러났을 때
- 이혼 위기에 있을 때
- 중독에 빠졌을 때
- 삶이 무너졌을 때
에도 그래도 내 형제입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라고 불러주시기 때문입니다.
돌아오는 길을 막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은 도망하는 사람의 길을 막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도 돌아오려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네가 예전에 어떻게 했는지 내가 다 알아.”
“이제 와서 무슨 예배야?”
“네가 무슨 자격으로 봉사를 해?”
“네가 그때 한 짓을 잊었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한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명령을 뒤집어 보면
본문의 명령을 반대로 바꾸면 형제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집니다.
- 방관하지 말라 → 달려가라
- 기뻐하지 말라 → 우는 자와 함께 울라
- 길을 막지 말라 → 길을 열어주라
- 원수에게 넘기지 말라 → 품어주라
이 자리가 바로 형제의 자리입니다.
맞은편과 형제의 자리
고난당하는 형제를 보면서
“내가 옳다.”
고 생각하면 나는 맞은편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힘들 때 내가 곁에 있어야겠다.”
고 생각하면 형제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신앙의 문제는 내가 얼마나 옳은 말을 하느냐보다 어디에 서 있느냐일 수 있습니다.
“요셉이 아니라 유다다”
겉으로 흠이 없어 보이는 요셉보다 예수님의 계보에 들어간 사람은 유다였습니다.
유다는 큰 죄를 범했지만
“그는 나보다 옳도다.”
라고 자기 죄를 인정했습니다.
반면 겉으로 모범적으로 살았다는 이유로
“나는 저런 사람과 다르다.”
고 생각한다면 그것 자체가 교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마음속으로는 ‘요셉 족속’일 수 있습니다
사고를 치지 않았고, 큰 죄가 드러나지 않았고,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겸손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속에는 언제나
“내가 옳다.”
“내가 중요하다.”
“저 사람과 나는 다르다.”
는 채색옷을 입고 있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자기 의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같이 묶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 많은 나를 형제라고 불러주셨다면 나 역시 다른 사람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그래도 제 형제입니다.”
형제의 재앙은 나의 기회가 아니라 사명입니다
형제가 무너졌을 때
- 내가 더 잘났음을 증명할 기회
- 그 사람의 자리를 차지할 기회
- 내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할 기회
가 아닙니다.
형제의 재앙은 나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 사람 곁에 서서, 함께 울고, 돌아올 길을 열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적용 질문
- 나는 누구에게 “네가 그때 어땠는지 다 알아”라고 하며 돌아올 길을 막고 있습니까?
- 내가 가족에게 자주 하는 ‘맞는 말’은 무엇입니까?
- ‘그래도 내 형제’인 사람에게 이번 주 먼저 건넬 한마디는 무엇입니까?
3. 없어질 나를 살리셨습니다
본문
오바댜 1:15-16
에돔은 유다의 심판을 구경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에돔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이다.”
형제에게 했던 판단이 결국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내가 한 판단이 내 머리로 돌아옵니다
다른 사람에게
“행한 대로 받는 거지.”
라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말을 그대로 나에게 적용하십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정죄했던 기준으로 나 자신이 판단받는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했던 모든 맞는 말이 그대로 나에게 돌아온다면 견딜 수 없습니다.
에돔이 마신 잔
에돔은 형제가 망하는 날 하나님의 성산에서 즐겼습니다.
그러나 그 즐거움의 잔이 결국 자신의 심판의 잔이 됩니다.
본문은 그 잔을 마신 결과를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
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행한 대로 받는다면 우리 역시 없어져야 할 존재입니다.
우리도 심판의 잔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고,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한다고 해서 이 심판에서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으로 태어나 하나님 앞에 진노의 잔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잔이 지금 우리 손에 없습니다.
왜일까요?
예수님께서 대신 마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 잔은 우리가 마셔야 할 심판과 진노의 잔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잔을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받은 심판은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행한 대로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문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에돔은 형제가 무너질 때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해 성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대로
성문 밖으로 나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잔을 대신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없어져야 할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대신 고난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살아난 사람은 형제 곁에 서야 합니다
내가 은혜로 살아났다는 사실을 알면 더 이상 맞은편에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는
형제의 곁
에 서야 합니다.
그 사람이 아직 예수님의 은혜를 모른다면 그 곁으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
우리는 쉽게 생각합니다.
“아내가 바뀌어야 한다.”
“남편이 문제다.”
“저 사람이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말씀과 공동체 안에서 자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문제였구나.”
를 깨닫게 됩니다.
한 사람이 자기 죄를 보면 가정이 살아나고, 한 목회자가 자기 죄를 보면 교회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처음 살아난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 내가 한 봉사
- 내가 드린 시간
- 내가 한 수고
- 내가 한 헌신
이 크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인정받지 못할 때 불평과 원망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이전에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나는 없어져야 할 사람이었는데 주님이 나를 살리셨다.
이 은혜를 잊으면 형제를 판단하게 되고, 이 은혜를 기억하면 형제의 곁으로 갈 수 있습니다.
형제의 날은 사실 우리의 날입니다
우리는 형제가 어려움을 당하는 날을 바라보지만 사실 우리 역시 늘 은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
라는 생각 자체가 나 자신을 정죄와 고립 속으로 끌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십자가의 자리입니다.
우리를 살려주신 처음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적용 질문
-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했던 ‘맞는 말’ 중 그대로 돌려받으면 가장 두려운 말은 무엇입니까?
- 예수님께서 그 잔을 대신 받으셨는데도 아직 “저 사람은 행한 대로 받아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 이번 주 어려움을 겪는 누구의 곁에 서서 나를 살리신 주님을 전하겠습니까?
최종 정리
형제의 날에 해야 할 세 가지 고백
1. 나도 ‘원 오브 뎀’입니다
형제가 어려움을 당할 때 멀리 서 있었던 에돔이 바로 나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은혜 없이는 똑같은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2. 그래도 내 형제입니다
죄가 드러나고 삶이 무너졌어도 하나님께서 그를 자기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옳은 말로 그 사람을 혼자 두지 말고
- 달려가고
- 함께 울고
- 돌아올 길을 열고
- 품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3. 없어질 나를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받는다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의 잔을 성문 밖 십자가에서 대신 마셨습니다.
그 은혜로 살아난 우리는 이제 맞은편이 아니라 형제의 곁에 서야 합니다.
핵심 문장
형제가 재앙을 당할 때 멀리 서 있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포학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어디에 서 있었는지도 보십니다.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나도 ‘원 오브 뎀’입니다.
죄가 드러난 날에도
그래도 내 형제입니다.
방관은 가담의 반대가 아니라
가담의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맞은편에 서는 사람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형제의 재앙은 나의 기회가 아니라
나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행한 대로 받았다면 없어졌을 나를
예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마셔야 할 심판의 잔을
대신 마셨습니다.
살아난 사람은 이제
맞은편이 아니라 형제의 곁에 서야 합니다.
기도 제목
하나님 아버지,
형제의 어려움을 바라보면서도 멀리 서 있었던 저를 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죄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주님께서 그것을 포학이라고 말씀하시니 인정합니다.
하나님,
저도 원 오브 뎀입니다.
제가 무시하고 같은 부류로 묶이기 싫어했던 사람과 저 역시 다르지 않은 죄인임을 인정하게 하소서.
형제가 힘들 때 “네가 선택한 거잖아”, “내가 저럴 줄 알았다”는 맞는 말로 그를 혼자 두었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죄가 드러난 날에도 그 사람을 여전히 자기 백성이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마음을 배우게 하시고,
“그래도 내 형제입니다.”
라고 고백하게 하소서.
돌아오려는 사람의 길을 막지 말고 길을 열어주며,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그 사람을 품는 형제의 자리에 서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제가 행한 대로 받았다면 본래 없던 것처럼 사라졌을 죄인입니다.
그러나 제가 마셔야 할 심판의 잔을 예수님께서 대신 마셔 주셨습니다.
성문 밖에서 고난받으시며 없어질 저를 살려 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소서.
봉사와 섬김과 열심을 자랑하지 않고
“나는 살려주신 은혜로 오늘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라는 처음 고백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이번 주 재앙의 날을 지나고 있는 한 사람을 생각나게 하시고, 그 사람의 맞은편이 아니라 곁으로 먼저 가게 하소서.
“제가 그랬습니다. 미안합니다.”
라는 한마디를 먼저 건네게 하시고, 나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 사람에게 전하게 하소서.
우리의 환경과 마음과 믿음은 변해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게 하소서.
그래도 내 형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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