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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8 주일설교

주일설교
S

Sungjin Jung

2026-10-19

조회수 2


2026.10.18 (주일) 설교 요약

본문

열왕기하 25:8-17

제목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설교자

김양재 목사님 (2부예배)


핵심 주제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이 불타고, 성벽이 무너지며,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기구들까지 모두 바벨론으로 실려 갑니다.

하나님의 집이 무너지는 이 사건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철저히 무너뜨리시지만 그 끝은 멸망이 아닙니다.

육의 성전과 내가 의지하던 것을 무너뜨리시는 가운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참된 성전을 세워 가십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세 가지입니다.

  1. 예루살렘을 무너뜨리십니다.
  2. 섬기던 그릇까지 가져가십니다.
  3. 잃은 은혜를 헤아리게 하십니다.

1. 예루살렘을 무너뜨리십니다

본문

열왕기하 25:8-12

바벨론의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들어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귀인의 집까지 모두 불태우고 성벽을 헐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지 않으셨습니다.

여러 차례 바벨론의 침공이 있었고, 19개월 동안 성을 포위하면서도 계속 돌이킬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항복하라”는 말씀을 듣지 않자 마침내 성전까지 불타게 됩니다.


성전 자체가 우상이 되었습니다

유다 백성은 성전이 있기 때문에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성전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자신들의 안전 보증서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고 외쳤습니다.

성전 안에 하나님이 계셔야 하는데 그 자리에

  • 남편
  • 아내
  • 자녀
  • 돈
  • 성공
  • 자신의 신앙 이력

이 들어가면 성전 자체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두신 성전이라도 우상이 되면 무너뜨리십니다.


예배로 불순종을 덮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예배드린 세월이 얼마인데.”

“그래도 주일예배는 안 빠지잖아.”

“교회에서 봉사도 했는데.”

그러나 예배당 문턱을 밟았다고 불순종이 덮이지 않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인데, 우리는 그 예배를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를 내 안전으로 삼은 죄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예배로 제 불순종을 덮었습니다.”


무너지는 사건의 배후를 봅니다

본문에서 성전을 불태우고 성벽을 허무는 것은 바벨론 군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배후에 하나님의 주권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을 때부터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면 이 성전이라도 던져버리겠다

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사건만 보지 않고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겸손은 환경입니다

바벨론은 지도자와 능력 있는 사람들을 먼저 끌고 가고 비천한 자들을 땅에 남겨 포도원과 밭을 맡깁니다.

그러나 끌려갔다고 버림받은 것도 아니고 남았다고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형편만으로 사람의 믿음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낮아진 환경은 사람이 자신의 실체를 볼 수 있게 하는 겸손의 환경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의 집이 무너지는 것을 판단하는 잣대가 아니라 내 속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적용 질문

  • 예배에 나온다는 사실로 덮어 온 내 불순종은 무엇입니까?
  • 내 불순종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신앙 이력은 무엇입니까?
  • 끌려간 사람과 남은 사람처럼 형편만 보고 속으로 판단한 지체는 누구입니까?

2. 섬기던 그릇까지 가져가십니다

본문

열왕기하 25:13-15

성전이 불탄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성전의

  • 두 놋 기둥
  • 받침
  • 놋 바다
  • 가마
  • 부삽
  • 부집게
  • 숟가락
  • 금과 은으로 만든 모든 그릇

까지 바벨론으로 가져갑니다.


묻고 회개하던 자리까지 사라집니다

성전 앞의 두 기둥은 야긴과 보아스였고, 놋 바다는 정결 의식에 사용되었습니다.

설교에서는 이를 하나님께 묻는 것과 회개의 의미로 연결합니다.

이 모든 것이 깨지고 사라진다는 것은 하나님께 묻고 회개하는 자리까지 없어지는 심각한 상태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깨져서 바벨론으로 실려 가는 그릇을 끝까지

“여호와의 성전의 그릇”

이라고 부릅니다.

깨져도 실려 가도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작은 섬김도 귀한 은혜입니다

본문은 큰 놋 기둥뿐 아니라 부집게와 숟가락 같은 작은 그릇까지 이름을 기록합니다.

이것들은 모두 “섬길 때 쓰는” 그릇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작아 보이는 섬김의 자리가 있습니다.

  • 목장에서 연락하는 일
  • 식사를 준비하는 일
  • 교회에서 작은 일을 맡는 것
  • 아이들을 돌보는 것
  • 가족을 돌보는 것
  •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는 것

이런 작은 섬김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없어지고 나서야 그 자리가 얼마나 귀했는지 알게 될 수 있습니다.


섬김을 내 자랑으로 삼은 죄

하나님께서 섬기라고 맡긴 자리를 우리는 어느 순간 자기 것으로 생각합니다.

  • 내가 얼마나 섬겼는데
  •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 왜 저 사람만 칭찬받는가
  • 이제 나도 안 하겠다

라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하나님을 섬기라고 주신 자리를 자기 이름을 남기는 자리로 사용한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를 내 자랑으로 삼은 죄입니다.

우리는 섬겨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살려주셨기 때문에 섬기는 것입니다.

섬길 수 있는 자리 자체가 처음부터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을 다시 내 것처럼 쓰지 말아야 합니다

아하스 왕은 성전의 기구를 자기 뜻대로 옮기고 바꾸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드린 것을 다시 자기 것처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 드리기로 한 시간
  • 하나님께 드리기로 한 물질
  • 하나님께 맡긴 직분
  • 섬기라고 주신 자리

를 자기 형편과 욕심에 따라 마음대로 옮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은 다시 내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보다 현실적인 성공을 원하는 마음

예레미야는 바벨론에서 70년의 훈련을 받으라고 했지만,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2년 안에 성전 기구가 돌아올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하나냐의 말을 좋아했습니다.

우리도

  • 망하지 않는다
  • 곧 해결된다
  • 성공한다
  • 회복된다

는 말은 좋아하지만,

  • 훈련받아야 한다
  • 십자가를 져야 한다
  • 기다려야 한다
  •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

는 말씀은 듣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육적인 회복보다 가치관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빼앗고 안 빼앗는 문제보다

“이 일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구나.”

를 깨닫게 하십니다.

적용 질문

  • 은혜로 받은 섬김의 자리를 내 자랑으로 삼아 사랑하지 못한 지체는 누구입니까?
  •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했던 일 가운데 공동체 앞에 내 죄로 내놓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 드린 것 가운데 내 것처럼 마음대로 옮겨 놓은 것은 무엇입니까?
  • 하나냐의 듣기 좋은 예언이 좋습니까, 예레미야의 십자가 지는 말씀이 들립니까?

3. 잃은 은혜를 헤아리게 하십니다

본문

열왕기하 25:16-17

본문은 이미 성전 기구들을 모두 가져갔다고 말했는데 다시 그 기구들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놋 기둥과 놋 바다와 받침의 무게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잃고 나서야 받은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압니다

성전 기구를 처음 만들었을 때도 놋이 너무 많아 그 무게를 측량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빼앗길 때도 다시

“헤아릴 수 없었으니”

라고 기록합니다.

잃어버리고 나서 보니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받은 것은

  • 예배할 자리
  • 말씀을 들을 기회
  • 섬길 자리
  • 함께할 지체
  • 가정
  • 공동체
  • 복음을 들을 기회

입니다.

그러나 받을 때는 당연하게 여기고 불평합니다.

잃고 나서야 이것이 모두 은혜였음을 깨닫습니다.


받은 은혜를 무엇을 위해 사용했는가

솔로몬은 성전 기구들을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받은 것을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예배는 내 안전을 위하여
  • 섬김은 내 자랑을 위하여
  • 직분은 내 이름을 위하여
  • 공동체는 내 위로만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받은 은혜를 헤아려 보면 결국 내가 무엇을 위해 그것을 사용했는지가 드러납니다.

그 결론에서 내 죄를 보아야 합니다.


성전이 무너져도 회개의 길은 닫히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이미 성전을 봉헌할 때

백성이 포로로 끌려간 곳에서도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기도하면 들어 달라

고 기도했습니다.

즉, 눈에 보이는 성전이 무너진다고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 순간이라도 회개하면 길이 열려 있습니다.


진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것이 예수님의 몸을 가리킨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유다의 죄 때문에 눈에 보이는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무너진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함께 지어져 가는 성전입니다

에베소서는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로 함께 지어져 간다고 말합니다.

벽돌 한 장이 혼자 집이 될 수 없듯이 신앙도 혼자 완성되지 않습니다.

  • 가정
  • 목장
  • 교회
  • 공동체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함께 지어져 갑니다.


받은 은혜를 나누어야 합니다

삶이 무너질 때 우리는 잃어버린 것만 붙잡고 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말씀 앞에서

“받은 은혜를 나는 어떻게 사용했는가?”

를 헤아려야 합니다.

내 죄가 보이면 그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그리고 내가 밀어냈던 지체에게 먼저 가서

“내가 서운해서 당신을 밀어냈습니다. 미안합니다.”

라고 말하고 다시 섬겨야 합니다.

이번에는 내 이름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실 집을 위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 받은 은혜를 헤아려 볼 때, 하나님을 섬기라고 받고도 나를 위해 사용한 것은 무엇입니까?
  • 함께 지어져 가야 할 지체 가운데 아직 마음을 닫아둔 사람은 누구입니까?
  •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이번 주 내가 섬기고 복음을 전할 이웃은 누구입니까?

최종 정리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세 가지 일

1. 예루살렘을 무너뜨리십니다

외적인 성전과 예배 자체를 우상처럼 붙들면서 불순종을 덮지 못하게 하십니다.

예배는 안전 보증서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내가 가장 의지하는 예루살렘을 무너뜨려 하나님만 섬기도록 하십니다.


2. 섬기던 그릇까지 가져가십니다

큰 기둥부터 작은 숟가락까지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던 모든 자리가 은혜였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섬김의 자리를 내 이름과 자랑을 위해 사용한 죄를 보게 하시고,

하나님께 드린 것을 내 것처럼 취급하지 않도록 하십니다.


3. 잃은 은혜를 헤아리게 하십니다

모든 것을 잃은 뒤에야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것을 주셨는지 깨닫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성전이 무너져도 회개의 길은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성전이시며,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이 거하실 집으로 함께 지어져 갑니다.


핵심 문장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무너뜨리시지만
그 끝은 멸망이 아닙니다.

예배는 은혜로 주신 것인데
우리는 그 예배를 내 안전의 보증서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배로 내 불순종을 덮을 수 없습니다.

깨져도 실려가도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섬겨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려주셨기 때문에 섬기는 것입니다.

섬길 수 있었던 자리 자체가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을
다시 내 것처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잃고 나서야
받은 은혜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음을 알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이 무너져도
회개의 길은 닫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성전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이 거하실 집으로 함께 지어져 갑니다.


기도 제목

하나님 아버지,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로 제 불순종을 덮고, 신앙 이력을 제 안전의 보증서처럼 사용했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제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붙들어 온 예루살렘이 무엇인지 보게 하시고, 그것이 무너질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그 사건 속에서 제 죄를 보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섬김의 자리를 제 이름과 자랑을 남기는 자리로 사용했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고 지체를 밀어내며, 하나님께 드린 시간과 물질과 직분을 다시 제 것처럼 사용했던 모습을 회개합니다.

섬겨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살려주셨기에 섬기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예배할 자리와 말씀을 들을 기회와 섬길 자리와 함께할 공동체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잃기 전에 깨닫고 누리게 하소서.

삶이 무너질 때 잃어버린 것만 바라보지 않고 받은 은혜를 헤아리며, 결국 모든 사건 속에서 제 죄를 보게 하소서.

눈에 보이는 성전이 무너져도 회개의 길은 닫히지 않았음을 믿고, 저의 죄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날마다 나아가게 하소서.

제가 밀어냈던 지체에게 먼저 다가가 사과하고, 내 이름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실 집을 위하여 다시 섬기게 하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함께 지어져 가며, 아직 이 집 밖에 있는 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모든 무너짐과 잃어버림까지도 결국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믿게 하소서.

한량없는 은혜입니다.


첨부파일 (1)
(주일)20261018_열왕기하25.8-17_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_김양재목사님(2부예배).pdf362.96 KB · 2026.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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