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1 주일설교
Sungjin Jung
2026-10-12
조회수 3
2026.10.11 (주일) 설교 요약
본문
열왕기하 24:18-25:7
제목
진노하심
설교자
김양재 목사님 (2부예배)
핵심 주제
아프지 않다고 건강한 것이 아닌 것처럼, 신앙에서도 아무 일이 없다고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시드기야는 11년 동안 말씀을 듣고 또 들었지만 끝까지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결국 유다의 멸망을 두고 “여호와께서 진노하셨다”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통 즉각적인 벌과 심판으로 생각하지만, 본문은 더 무서운 진노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 악을 내버려두시는 것
- 성이 바벨론에게 포위되게 하시는 것
- 결국 왕이 끌려가게 하시는 것
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 진노의 목적은 단순한 멸망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돌이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1. 악을 내버려두십니다
본문
열왕기하 24:18-20
시드기야는 21세에 왕이 되어 11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곧 “하나님이 옳으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름과 달리 시드기야는 형 여호야김의 악한 행위를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말씀을 묻는 것과 말씀을 따르는 것은 다릅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몰래 불러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기도도 부탁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말씀을 구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말씀을 묻고도 자기 생각과 다르면 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불태운 여호야김이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은 시드기야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같은 악한 길을 걸었습니다.
시드기야가 말씀을 듣지 못한 이유
첫 번째 이유는 교만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계속 말씀하셨지만 시드기야는 겸손하지 않았습니다.
환경은 이미 충분히 낮아졌습니다.
바벨론 왕이 자신을 왕으로 세웠다는 사실 자체가 유다 왕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낮아졌다고 사람이 자동으로 겸손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낮아진 환경에서도
“나는 왕이다.”
라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더 무서운 진노는 악을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단순히 벌을 내리는 것만이 아닙니다.
말씀을 들어도 돌이키지 않고, 사건이 와도 바뀌지 않고, 계속 자기 생각대로 가도록 내버려두시는 것이 더 무서운 진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끊지 않으셨습니다.
계속 선지자를 보내셨고, 계속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시드기야가 끝까지 듣지 않았습니다.
벌을 받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죄를 짓고도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느끼는 것입니다.
“아무 일 없으니 괜찮다”가 위험합니다
우리도 큐티하고, 설교 듣고, 힘들 때는 기도 부탁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내 생각과 다르면 따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건이 지나가고 아무 일이 없으면 다시 괜찮은 줄 압니다.
그 상태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나를 찌르고, 권면이 불편하고, 내 죄가 보이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내버려두지 않으신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옳으십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시드기야의 이름은 “하나님이 옳으시다”라는 뜻이었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 고백을 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제가 옳습니다.”
가 아니라
“하나님이 옳으십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권면해 주는 사람 앞에서 이 고백이 안 되는 것이 우리의 죄입니다.
육적인 관리도 영적인 적용입니다
설교에서는 건강에 관한 매우 실제적인 적용도 강조합니다.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 병원에 가야 할 때 가고
- 약을 먹고
- 술과 담배를 끊고
- 운동하고
- 식생활을 관리하는 것
도 신앙의 적용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몸을 방치하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적용 질문
- 말씀을 듣고도 따르지 않고 미루면서 “아무 일 없으니 괜찮다”고 안심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 말씀으로 권면해 준 사람에게 “제가 틀렸습니다”라고 하지 못한 일은 무엇입니까?
- 건강과 생활 습관에서 지금 즉시 순종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2. 성이 바벨론에게 포위되게 하십니다
본문
열왕기하 24:20b-25:3
시드기야는 결국 바벨론 왕을 배반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계속
“바벨론에 순종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끝까지 애굽의 힘을 의지했습니다.
내버려둔 악은 결국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을 듣지 않던 시드기야는 결국 바벨론을 배반합니다.
내버려둔 죄가 어느 순간 실제 행동과 결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보다
- 돈
- 부모
- 자녀
- 실력
- 직장
- 학벌
- 인간적인 배경
을 더 의지한다면 결국 그 의지의 대상이 드러나는 사건이 옵니다.
19개월 동안 포위된 예루살렘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19개월 동안 포위했습니다.
하나님은 성을 단번에 무너뜨리지 않으셨습니다.
긴 시간 동안 포위된 상태로 두셨습니다.
그 시간은 단순한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돌이킬 수 있도록 기다려 주신 시간이었습니다.
포위는 무엇을 의지했는지 보여줍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힘든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진노다.”
라고 단순하게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포위된 사건을 통해
“나는 하나님 대신 무엇을 의지해 왔는가?”
를 보아야 합니다.
내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던
- 재산
- 자녀
- 배우자
- 직장
- 건강
- 명예
가 흔들릴 때 내가 실제로 무엇을 의지했는지가 드러납니다.
진노 중에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포위된 마지막 순간에도 시드기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 것이다.”
심판 중에도 하나님은 말씀을 끊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살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이것이 진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항복은 사람에게 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이 옳아서 항복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은 악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바벨론을 훈련의 도구로 사용하시고
“항복하라.”
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항복은 사람에게 비굴하게 지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꺾고 하나님의 말씀에 항복하는 것
입니다.
시드기야를 막은 것은 체면이었습니다
시드기야는 항복한 유다 사람들이 자신을 조롱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망하기 직전에도 사람의 시선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 가족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하지 못하고
- 목장에서 죄를 내놓지 못하고
- 사람들에게 창피할까 봐 적용하지 못하고
끝까지 버틸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버티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시드기야가 말씀을 거부하며 버티는 동안 예루살렘에는 심각한 기근이 왔습니다.
왕 한 사람의 불순종이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온 백성이 굶었습니다.
우리도 고집을 믿음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버티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내가 옳다는 고집일 수 있습니다.
포위된 시간은 항복하라고 주신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다리시고 또 기다리신 뒤 사건을 허락하십니다.
따라서 포위된 시간은
“끝까지 버텨라.”
는 시간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께 항복하라.”
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 두 손을 들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라고 나아가는 것이 살길입니다.
바벨론은 우리의 거룩을 위한 훈련입니다
우리 삶의 바벨론이 무엇인지는 상황마다 다릅니다.
- 어떤 사람에게는 배우자
- 어떤 사람에게는 자녀
- 어떤 사람에게는 직장
- 어떤 사람에게는 질병
- 어떤 사람에게는 실패
가 바벨론이 될 수 있습니다.
바벨론은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해서만 붙이신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거룩을 위한 하나님의 훈련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혼자 판단하지 말고 말씀과 공동체를 통해 오늘 나의 바벨론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적용 질문
- “이것만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믿고 기대해 온 것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이 “나가라, 항복하라”고 하시는데 끝까지 버티고 있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 “이것만은 못 해”라고 버티는 동안 사랑과 말씀에 굶고 있는 가족이나 공동체 식구는 누구입니까?
3. 왕이 끌려가게 하십니다
본문
열왕기하 25:4-7
결국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집니다.
시드기야는 밤중에 성의 곁문으로 도망갑니다.
그러나 바벨론 군대가 그를 추격했고 결국 사로잡혔습니다.
우리는 말씀 앞에 서기보다 곁문을 찾습니다
시드기야는 자기 백성을 버리고 밤중에 도망갔습니다.
우리도 상황이 너무 힘들면
- 교회를 떠나고 싶고
- 배우자를 떠나고 싶고
- 부모를 떠나고 싶고
- 직장을 떠나고 싶고
빠져나갈 길부터 찾습니다.
말씀 앞에 서기보다 내가 빠져나갈 “곁문”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사건에서 도망친다고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버틸 것이 있으면 계속 의지합니다
예루살렘이 오랫동안 포위를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전에 만들어 놓은 수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버틸 자원이 있으면 사람은 끝까지 그 자원을 붙듭니다.
우리도
- 돈
- 사람
- 능력
- 학벌
- 건강
- 재산
이 조금 남아 있으면 그것을 의지해 다시 한번 버텨보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완전히 무너지기도 합니다.
악한 왕의 왕 노릇에도 끝이 있습니다
시드기야는 결국 붙잡혀 바벨론 왕 앞에서 심문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악을 내버려두신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영원히 왕 노릇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인생은 한 뼘입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그 왕 노릇에는 끝이 있습니다.
가장 참혹한 결말
시드기야는 눈앞에서 자신의 아들들이 죽임당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 후 두 눈이 뽑히고 놋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마지막이라도 돌아오면 너와 네 가족이 살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끝까지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시드기야는 참된 왕이 아니었습니다
시드기야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지도 지키지도 못했습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왕을 약속합니다.
“여호와 우리의 공의”
라고 불리는 다윗의 후손입니다.
그 왕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시드기야와 예수님의 차이
시드기야는 밤에 동산의 곁문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밤에 동산에서 자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 앞으로 나가셨습니다.
시드기야는 자기 죄 때문에 심문받고 끌려갔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심문받고 끌려가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진노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버림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 피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내쫓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진노를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에게 오는 포위와 사건은 단순히 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회개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시드기야는 끝까지 불순종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마지막까지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예레미야 34장에는 시드기야가 칼에 죽지 않고 평안히 죽을 것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설교에서는 이를 통해 시드기야가 마지막에는 바벨론 감옥에서 예레미야의 말씀을 기억하며 회개했을 가능성을 바라봅니다.
본문의 강조점은 이것입니다.
마지막이라도 내 죄가 생각나고 돌이키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속에도 끝까지 사람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긍휼이 있습니다.
행위로 사람의 구원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므낫세처럼 매우 악한 왕도 마지막에 회개했습니다.
따라서
“저 사람은 저런 죄를 지었으니 구원받을 수 없다.”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다른 사람의 죄를 판단하기 위해 읽는 책이 아니라 내 죄를 보기 위해 읽는 말씀입니다.
겉으로 죄를 많이 짓지 않고 성품이 좋아 보여도 자기 죄를 보지 못하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밖에는 피할 곳이 없습니다
힘든 상황이 오면 우리는 곁문을 찾습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피할 곳은 십자가뿐입니다.
내가 왕처럼 살던 자리에서 내려와
- 내 죄를 보고
- 하나님께 항복하고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적용 질문
- 내가 밤에 몰래 빠져나가려고 만들어 둔 “곁문”은 무엇입니까?
- 달아나고 싶은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회개하고 감당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 사람의 시선이 두려워 복음을 전하지 못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최종 정리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세 단계로 나타납니다
1. 악을 내버려두십니다
죄를 지어도 아무 일이 없는 상태가 반드시 은혜는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도 계속 거부하고, 사건이 와도 돌아오지 않으며, 자기 생각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시는 것이 더 무서운 진노일 수 있습니다.
말씀이 나를 찌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증거입니다.
2. 바벨론에게 포위되게 하십니다
하나님보다 의지하던 것이 무엇인지 드러나게 하십니다.
포위된 시간은 끝까지 버티라고 주신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항복하라고 주신 시간입니다.
바벨론은 우리를 멸하기 위한 존재만이 아니라 우리의 거룩을 위한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3. 왕이 끌려가게 하십니다
끝까지 말씀을 거부한 시드기야는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끌려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마지막까지 말씀하시고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시드기야는 자기 백성을 구원할 수 없는 왕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와 진노를 대신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참된 왕이십니다.
핵심 문장
벌을 내리시는 것만이 진노가 아닙니다.
악을 내버려두시는 것이 더 무서운 진노입니다.
말씀을 묻는 것과
말씀을 따르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옳으십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포위된 시간은
버티라고 주신 시간이 아니라 항복하라고 주신 시간입니다.
바벨론은
우리의 거룩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입니다.
시드기야는 자기 죄 때문에 심문받고 끌려갔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 때문에 심문받고 끌려가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진노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끝까지 피할 곳은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이라도 내 죄가 생각나고 돌이키는 것이 구원입니다.
기도 제목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듣고도 제 생각과 다르면 따르지 않고, 아무 일이 없으면 괜찮은 줄 알고 살았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씀으로 권면해 주는 사람 앞에서 “제가 틀렸습니다. 하나님이 옳으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겸손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제가 하나님보다 의지하는 애굽이 무엇인지 보게 하시고, 포위된 사건이 찾아왔을 때 끝까지 버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항복하게 하소서.
사람의 체면과 시선을 붙잡느라 가족과 공동체를 말씀과 사랑에 굶게 하지 않게 하시고, 지금 사과하고 지금 회개하고 지금 순종하게 하소서.
힘든 사건 가운데 도망갈 곁문을 찾지 않게 하시고, 제가 왕처럼 살던 자리에서 내려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게 하소서.
제가 받아야 할 진노를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신 예수님의 은혜를 믿고, 마지막까지 회개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소서.
우리 가족과 공동체 가운데 아직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고 전하게 하소서.
저의 결론도 마지막에는 회개하고 주님 안에서
“평안히”
가 되게 하소서.
평안히 천국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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