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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4 주일설교

주일설교
S

Sungjin Jung

2026-10-06

조회수 2


2026.10.04 (주일) 설교 요약

본문

열왕기하 24:8-17

제목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설교자

김양재 목사님 (2부예배)


핵심 주제

유다 왕 여호야긴은 열여덟 살에 왕이 되어 석 달 동안 다스렸지만, 아버지 여호야김의 길을 따라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결국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왕과 지도자, 용사, 장인과 대장장이들을 포로로 끌고 갔으며 성전과 왕궁의 보물까지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비극적인 사건을 단순히 유다의 패배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모든 것이 무너지고 빼앗기고 사로잡히는 사건조차 하나님의 말씀 밖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는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1. 내가 따라간 악한 행위를 봅니다.
  2. 이루어진 말씀을 듣습니다.
  3. 사로잡혔을 때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습니다.

1. 내가 따라간 악한 행위를 봅니다

본문

열왕기하 24:8-12

여호야긴은 불과 석 달 동안 왕으로 다스렸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너무 짧은 기간이기에 특별히 큰 잘못을 했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문제는 단순히 왕으로서 어떤 사건을 많이 일으켰느냐가 아니었습니다.

누구의 길을 따라가고 있었느냐가 중요했습니다.


부모를 따른다고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여호야긴은 아버지 여호야김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겉으로 보면 부모의 길을 따르는 효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칼로 잘라 불에 태웠던 왕입니다.

그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따라간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악이었습니다.

반대로 여호야김의 아버지는 요시야였습니다.

요시야는 말씀 앞에서 옷을 찢고 회개했던 왕이지만, 그의 아들들은 좋은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부모가 했기 때문에 나도 한다.”

가 아닙니다.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구속사와 말씀 앞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욕하면서 닮아갑니다

우리는 부모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 아버지가 화를 많이 냈다.
  • 어머니의 잔소리가 힘들었다.
  • 부모가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 가정환경이 힘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내가 배우자와 자녀에게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아버지의 고함이 싫었는데 내가 똑같이 소리를 지릅니다.

어머니의 잔소리가 싫었는데 내 입에서 같은 말이 나옵니다.

부모를 원망하면서도 부모의 악한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억울함은 “내가 옳다”는 확신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쉽게 말합니다.

“부모 때문에 이렇게 됐다.”

“내 환경 때문에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물론 부모와 환경 때문에 실제로 많은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를 배우자와 자녀에게 다시 쏟아낸 것은 결국 나 자신입니다.

회개는

“너 때문”

에서

“나 때문”

으로 가는 것입니다.

내가 피해자라는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 사건을 통해 드러난 내 죄까지 도착해야 합니다.


간증은 내 죄까지 가야 합니다

간증하면서

  • 부모 때문에 힘들었다.
  • 배우자 때문에 힘들었다.
  • 환경 때문에 상처받았다.

는 이야기만 반복하면 아직 사건의 중심이 다른 사람에게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그 사건 속에서 나도 그 악한 길을 따라갔습니다.”

라는 고백까지 가는 것입니다.

내 죄가 보일 때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릴 수 있습니다.


구원의 목적이 아니면 문제가 해결되어도 기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배우자가 교회에 나오고, 자녀가 바뀌고, 문제가 해결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환경을 얻는 것이 목적이라면 문제가 해결되어도 또 다른 불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신앙의 목적은 내가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내 육이 무너지고 내 죄가 보이는 것이 오히려 나를 깨어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영성은 가정에서 나타납니다

교회에서 아무리 양육을 받고 봉사를 많이 해도,

가정에서

  • 힘든 배우자를 대하고
  • 어려운 자녀를 품고
  • 인간관계에서 순종하고
  • 실패와 망하는 사건까지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 실제 영성을 드러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 힘든 사람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관계 안에서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적용 질문

  • 부모와 환경을 탓하면서 내가 똑같이 따라가고 있는 악한 행위는 무엇입니까?
  • 나는 지금 누구에게 그 행동을 반복하고 있습니까?
  • 내가 자녀에게 물려주고 있는 길은 말씀을 태우는 길입니까, 말씀 앞에 무릎 꿇는 길입니까?
  • 내 간증은 다른 사람의 잘못에서 끝납니까, 내 죄까지 도착했습니까?

2. 이루어진 말씀을 듣습니다

본문

열왕기하 24:13-14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의 모든 보물을 가져가고, 솔로몬이 만들었던 성전의 금그릇까지 파괴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이 존재하는 한 자신들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의지하던 성전의 보물까지 모두 빼앗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사건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하나님의 집이 털린 것은 하나님의 패배가 아닙니다

히스기야 시대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왕궁의 모든 보물이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여러 왕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바뀌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말씀하신 그대로 성전과 왕궁의 보물이 바벨론으로 옮겨졌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집이 털린 것은 하나님의 패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집행이었습니다.


사건을 말씀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먼저 상황을 해석하려 합니다.

  • 운이 없었다.
  • 상대가 나빴다.
  • 나라가 잘못됐다.
  • 내가 믿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그러나 성경은 사건보다 먼저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오늘 일어난 사건이 그동안 묵상했던 말씀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사건을 보면 내가 고집하고 있던 뜻과 내가 의지하던 것이 드러납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던 보물

히스기야는 병에서 낫자 자신의 보물을 바벨론 사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는데 어느 순간 하나님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자랑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비슷합니다.

  • 건강이 회복되면 예배가 느슨해지고
  • 문제가 해결되면 큐티가 밀리고
  • 자녀가 잘되면 자녀를 자랑하고
  • 직장이 잘되면 직장을 의지하고
  • 신앙생활을 잘하면 자신의 경건을 자랑합니다.

하나님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더 의지하게 됩니다.

그것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난 것이 나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지도자, 용사, 장인, 대장장이 등 나라를 지탱하던 사람들을 모두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잘 배운 사람, 권세 있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심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비천한 자들만 땅에 남았습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사람이 가진 조건과 능력이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고 보여줍니다.


남은 자를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세상에서는

  • 능력 있는 사람
  • 성공한 사람
  • 많이 가진 사람

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환난당하고 원통하고 빚진 자처럼 낮아진 사람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낮아진 환경은 내가 잘났다는 생각을 내려놓게 하고 말씀을 듣게 하는 환경이 될 수 있습니다.


계획이 깨질 때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내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왜 믿었는데 이런 일이 생깁니까?”

라고 하나님을 판단하기보다

“주님, 말씀을 듣겠다고 하면서도 제 뜻만 고집했습니다.”

라고 돌이켜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성경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내 죄를 드러낼 때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할수록 듣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워합니다.

특히 지식과 경험과 능력이 많을수록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 부부 관계
  • 부모와 자녀
  • 교회
  • 사회
  • 정치

의 문제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큐티는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시간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 순종하라고 붙여주신 바벨론은 무엇인지, 내가 붙잡고 있는 애굽은 무엇인지

분별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말씀 때문에 적용하며 갑니다

우리는 미래를 모두 알 수 없습니다.

세상의 역사도, 나라의 역사도, 가정의 미래도, 개인의 미래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망하지 않기 위해서”

말씀을 적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때문에 오늘의 적용을 하며 가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며 쌓아두고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 내 계획이 깨질 때 나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내 뜻만 고집하고 있습니까?
  • 말씀을 통해 드러난 내 죄를 공동체에서 나눌 수 있습니까?

3. 사로잡혔을 때 돌보심을 믿습니다

본문

열왕기하 24:15-17

본문에는 “사로잡아 가고”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왕도, 왕의 어머니도, 왕의 아내도, 지도자도, 용사도, 장인과 대장장이도

모두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 왕은 유다 왕의 이름까지 바꾸었습니다.

모든 주도권을 빼앗긴 것처럼 보입니다.


사로잡힌 사람이 버림받은 사람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포로가 된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께도 버림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포로들을 좋은 무화과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4장에서 하나님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 백성을 잘 돌보겠다고 약속하십니다.

  • 다시 세우고
  • 헐지 않고
  • 심고
  • 뽑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낮아진 환경이 겸손의 환경이 됩니다

잘나가고 힘이 있던 사람들이 모든 것을 빼앗기고 포로가 되면서 낮아졌습니다.

그 비천한 환경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난을 당했기 때문에 자동으로 좋은 무화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무화과가 되는 근거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입니다.


돌이킬 마음도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로들에게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주어서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킬 마음을 주셔서 돌아오게 하십니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로잡힌 자리에서 하늘이 열립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로 사로잡혀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자유롭고 형편이 좋을 때가 아니라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자리에서 의지할 분이 하나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바벨론에서도 살아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포로들에게

  • 집을 짓고
  • 거기에서 살고
  • 텃밭을 만들고
  • 그 열매를 먹고
  •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며
  • 그곳을 위해 기도하라

고 합니다.

“언제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까?”

만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자리에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나의 바벨론은 어디입니까?

우리에게도 바벨론처럼 느껴지는 자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힘든 직장
  • 시댁이나 처가
  • 병실
  • 믿지 않는 배우자
  • 힘든 자녀
  • 경제적인 어려움
  • 피하고 싶은 관계

우리는 그곳에서 빨리 벗어나기만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그 사람들의 평안과 구원을 위해 기도합니다.


무조건 폭력과 학대를 참고 있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로잡힌 자리에서 상대의 구원을 위해 기도한다고 해서 위험한 폭력과 학대를 무조건 견디라는 뜻은 아닙니다.

필요하면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고 안전한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움과 복수를 목적으로 상대를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죄를 분명하게 다루면서도 그 사람의 구원까지 바라보는 것입니다.


십자가 때문에 다시 돌아갈 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받아주시는 것은 죄를 모르거나 못 본 척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을 심판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로잡힌 자리에서도 하나님께 돌아갈 길은 열려 있습니다.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입니다.


포로 사건은 끝이 아니라 마디입니다

마태복음 1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바벨론 포로는 하나님의 약속이 끊어진 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에게 이어지는 족보의 한 마디가 되었습니다.

여호야긴은 왕위를 잃고 유다 왕국은 무너졌지만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태웠던 여호야김의 집안에서도 결국 여호야긴을 통해 그리스도의 계보가 이어졌습니다.


심판의 말씀뿐 아니라 약속의 말씀도 이루어집니다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는 심판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고의 말씀을 이루시는 것처럼 구원과 회복의 약속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사로잡힌 사건이 끝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구속사는 끝나지 않습니다.

적용 질문

  • 내가 “끌려와 있다”고 느끼는 나의 바벨론은 어디입니까?
  • 다 빼앗긴 것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것을 보고 있습니까, 잃어버린 것만 붙들고 있습니까?
  • 내가 원망하던 사람의 평안과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최종 정리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를 살아가는 세 가지 태도

1. 봅니다 — 내가 따라간 악한 행위를 봅니다

부모와 환경만 탓하지 않고 그 환경에서 내가 따라간 죄를 보아야 합니다.

회개는 “너 때문”에서 “나 때문”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간증도 결국 내 죄까지 도착해야 합니다.


2. 듣습니다 — 이루어진 말씀을 듣습니다

내 계획이 무너지고 가진 것이 빼앗길 때 사건만 바라보지 말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보물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고,

“말씀과 같이 되었구나.”

라고 사건을 해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와 왕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3. 믿습니다 — 사로잡혔을 때 돌보심을 믿습니다

바벨론처럼 느껴지는 곳에 사로잡혀 있어도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낮아진 자를 좋은 무화과처럼 돌보시며 돌이킬 마음까지 주십니다.

그 자리에서 집을 짓고 살아가며 상대의 평안과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포로 사건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한 마디가 될 수 있습니다.


핵심 문장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는
행위의 옳고 그름만 따지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억울함은
“내가 옳다”는 확신에서 나옵니다.

회개는
“너 때문”에서 “나 때문”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 털린 것은
하나님의 패배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집행이었습니다.

왕은 바뀌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는 망하지 않으려고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주신 말씀 때문에 적용하며 갑니다.

사로잡힌 사람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은 아닙니다.

우리가 돌아와서 좋은 무화과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셔서 돌아오게 하십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건은 족보의 끝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하나의 마디가 되었습니다.

심판의 말씀뿐 아니라
구원의 약속도 말씀과 같이 이루어집니다.


기도 제목

하나님 아버지,

다른 사람과 부모와 환경을 탓하면서 제가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악한 길을 보지 못했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 사람 때문에”라고 말하던 자리에서 “주님, 제가 그 길을 따라갔습니다”라고 고백하게 하시고, 제 간증이 다른 사람의 잘못에서 끝나지 않고 제 죄까지 도착하게 하소서.

제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자랑했던 보물을 보여주시고, 계획이 무너질 때 형편으로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고 이루어진 말씀을 듣게 하소서.

잘난 것과 가진 것이 저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말씀이 저를 살리는 줄 믿게 하소서.

제가 사로잡혀 있다고 느끼는 바벨론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게 하시고, 잃어버린 것만 바라보지 않고 주님께서 남겨두신 것을 보게 하소서.

제가 원망하던 사람의 평안과 구원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위험한 죄는 분명하게 다루되 미움과 복수로 상대를 심판하지 않게 하소서.

제 공로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심판을 대신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다시 하나님께 돌아갈 길이 열렸음을 믿습니다.

사로잡힌 사건도 제 인생의 끝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구속사의 한 마디가 되게 하시고,

오늘의 삶을 보며, 듣고, 믿으며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고 고백하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큐티하고 목장 갑시다.


첨부파일 (1)
(주일)20261004_열왕기하24.8-17_말씀과 같이 되었더라_김양재목사님(2부예배).pdf396.22 KB · 2026.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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