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7 주일설교
Sungjin Jung
2026-09-28
조회수 3
2026.09.27 (주일) 설교 요약
본문
신명기 27:1-10
제목
명령하는 이 명령
설교자
김성우 목사님 (1부예배)
핵심 주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복잡하게 숨기지 않으시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크게
- 하라
- 하지 마라
- 지키라
는 명령으로 나타납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명령을 지키기 싫어 우리의 생각과 상처로 말씀을 꼬아서 듣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복하여 명령하시는 것은 우리를 억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와 상처와 왜곡된 기억으로 망가진 우리의 삶을 다시 창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말씀과 명령으로 창조하셨듯이, 오늘도 하나님의 명령을 통해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 가십니다.
그렇다면 “명령하는 이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기록해야 합니다.
- 에발산 위에 세워야 합니다.
- 잠잠하여 들어야 합니다.
1. 기록해야 합니다
본문
신명기 27:2-4
이스라엘은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는 여리고성과 여러 민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먼저 전쟁 전략을 세우거나 새로운 땅에서 살아갈 방법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명령하신 것은
큰 돌을 세우고 석회를 바른 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는 것이었습니다.
기록해야 명령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잊어버리는 존재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명령도 기록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립니다.
따라서 아침에 말씀을 묵상할 때
-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 약속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 말씀 앞에서 드러나는 내 죄는 무엇인지
- 오늘 적용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기록해야 합니다.
삶이 복잡하고 관계가 얽혀 있을수록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면 더욱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러나 기록하면 사건과 감정이 분리되고, 무엇이 사실인지 조금씩 분명해집니다.
써서 큐티해야 합니다
설교에서는 복잡한 계산도 종이에 적으면 풀 수 있는 것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우리의 인생도 기록해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말씀을 단순히 귀로 듣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 말씀을 쓰고
- 사건을 쓰고
- 내 감정을 쓰고
- 죄를 쓰고
- 적용을 기록해야 합니다.
큐티의 꽃은 결국 적용입니다.
기록은 단순한 메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실제 행동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이미 많은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아도 우리 안에는 이미 많은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어린 시절의 상처
- 부모와의 관계
- 실패
- 수치
- 버림받은 기억
- 두려움
- 분노
- 트라우마
이런 과거의 기록 때문에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A”라고 말씀하셔도 우리는 그것을 “C”처럼 왜곡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관계와 하나님의 말씀까지 왜곡해서 해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거짓 서사를 기록으로 발견해야 합니다
상처를 입은 사람은 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
-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
- 사람은 결국 나를 버릴 것이다.
-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
와 같은 이야기를 사실처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과거의 상처에서 만들어진 “거짓 서사”일 수 있습니다.
기록하면 감정과 사실을 분리해서 볼 수 있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돌에 석회를 바르는 의미
하나님은 돌에 바로 말씀을 기록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먼저 석회를 바르라고 하십니다.
돌에는 이미 오랜 세월의 흔적과 상처가 있습니다.
석회를 바른다는 것은 과거의 흔적 위에 새로운 글을 쓸 수 있도록 새 표면을 만드는 것입니다.
설교에서는 이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합니다.
석회를 바르는 것은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함입니다.
과거의 상처와 실패가 아무리 깊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기 시작하면 그 위에 새로운 기록이 써지기 시작합니다.
고난이 석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찾아올 때 사건을 단순히 저주와 실패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 가운데 주신 말씀을 붙잡고 적용하면 고난이 오히려 새로운 기록을 쓰는 석회가 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에서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로 해석이 바뀌는 것입니다.
말씀을 적용한 사건은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삶에서 직접 적용한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깊이 기록됩니다.
새 영으로 새로운 기록을 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새로운 석회를 발라주시고, 그 위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할 수 있게 하십니다.
적용 질문
-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내게 명령하신 “하라, 하지 마라, 지키라”는 무엇입니까?
- 나는 써서 큐티하고 있습니까, 귀로 듣기만 하고 있습니까?
- 평생 잊을 수 없는 강한 트라우마는 무엇입니까?
- 그 사건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해석되었습니까?
- 내가 실제로 적용해서 기억에 남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 계속 미루고 있는 적용은 무엇입니까?
2. 에발산 위에 세워야 합니다
본문
신명기 27:4-8
하나님께서는 석회를 바르고 말씀을 기록한 큰 돌을 아무 곳에나 세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돌을 에발산 위에 세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에발산은 저주를 선포하는 산이고, 그리심산은 축복을 선포하는 산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심산, 즉 축복의 산으로 올라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록한 돌을 에발산 위에 세우라고 하십니다.
내가 에발산 위에 있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에발산 위에 선다는 것은 내가 본래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기록할수록
“나는 이 말씀을 잘 지켰다.”
가 아니라
“나는 이 명령조차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사람이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보며 쉽게 말합니다.
- 왜 그렇게 했어?
- 왜 거짓말했어?
- 왜 그것을 못 끊어?
- 왜 그것도 못 해?
이렇게 상대를 정죄할 때 나는 스스로를 그리심산에 놓고 상대를 에발산에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나도 그 환경이었다면 그랬을 수 있다”
에발산에 선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를 쉽게 정죄하지 않습니다.
“나는 절대 저렇게 하지 않는다.”
가 아니라
“나도 같은 환경에 있었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을 것이다.”
라는 고백으로 나아갑니다.
겸손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환경이 있을 뿐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게 될 때 다른 죄인도 이해하고 환대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지킬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기록하고, 결단하고, 공동체에서 적용하고, 또다시 결단해도
우리는 결국 내 옆의 한 사람조차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아들이라고 명령하셨는데도 한 사람에게 자리 하나 내어주기 힘든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에발산은 바로 이 사실을 인정하는 자리입니다.
“주님, 저는 이 명령을 제 힘으로 지킬 수 없습니다.”
에발산 위에는 제단도 있습니다
그러나 에발산에는 말씀을 기록한 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옆에 제단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그 제단에서는
- 번제
- 화목제
를 드립니다.
내가 말씀을 지킬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제단이 보입니다.
번제단 — 나를 대신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번제에서는 죄인을 대신하여 제물이 죽습니다.
설교에서는 이를 십자가와 연결합니다.
내가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멸망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깨달을 때
나의 죄를 대신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 죄를 보지 못하면 십자가의 은혜도 깊이 알기 어렵습니다.
화목제단 —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러주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원수였던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받아주십니다.
“죄가 없어졌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너는 내 자녀다.”
라는 관계의 회복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화목입니다.
에발산에서 함께 먹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바로 에발산 위에서 화목제를 드리고 함께 먹으며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죄인들이 그리심산으로 옮겨간 뒤 함께 먹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에발산 위에서 함께 먹습니다.
설교에서는 이것을 목장 공동체의 모습으로 연결합니다.
죄인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함께 먹고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습니다
하나님은 제단을 만들 때 쇠 연장을 사용해 돌을 예쁘게 다듬지 말라고 하십니다.
울퉁불퉁한 돌, 모난 돌, 상처 많은 돌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보며
“조금만 바뀌었으면 좋겠다.”
“저 부분만 다듬어지면 좋겠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돌을 그대로 사용하십니다.
“다듬지 않은 돌”이 온전한 돌입니다
설교에서는 “다듬지 않은 돌”을 원래 상태 그대로의 온전한 돌이라는 의미로 설명합니다.
혼자 있을 때는
- 깨진 돌
- 모난 돌
- 쓸모없는 돌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돌들이 모여
- 가정이 되고
- 부부가 되고
- 공동체가 되고
- 목장이 되면서
하나님의 제단을 이루게 됩니다.
내가 바꾸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사람이 나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온전한 상태의 돌”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포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약함과 죄를 다듬고 포장해서 보여주려고 합니다.
신앙 안에서도
- 괜찮은 사람처럼
- 믿음 좋은 사람처럼
- 문제가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대로 나오라.
다듬고 포장한 모습이 아니라 깨어지고 모난 모습 그대로 나아갈 때 그 돌들이 모여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룹니다.
적용 질문
- 내가 저주받은 에발산 위에 서 있는 존재임이 인정됩니까?
- 마음에 들지 않는 내 옆의 돌을 버리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까?
- 내 옆의 사람을 온전한 모습으로 보고 있습니까, 단지 아픈 모습만 보고 있습니까?
- 공동체 앞에서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예쁜 돌처럼 꾸미고 있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 다른 사람을 에발산에 세우고 나는 그리심산에서 정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3. 잠잠하여 들어야 합니다
본문
신명기 27:9-10
“이스라엘아 잠잠하여 들으라.”
말씀을 기록하고, 내가 에발산 위의 죄인임을 인정한 후,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잠잠하여 들으라고 명령하십니다.
듣기 위해 잠잠해야 합니다
본문의 “잠잠하여”는 단순히 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듣기 위해 조용히 하라
는 의미로 설명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려면 먼저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기 위한 침묵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예배를 시작할 때 장난감을 내려놓고 “모두 제자리”라는 노래에 맞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제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 남편은 남편의 자리
- 아내는 아내의 자리
- 부모는 부모의 자리
- 자녀는 자녀의 자리
- 학생은 학생의 자리
내 자리를 버리고 다른 사람의 자리를 판단하고 통제하려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잠잠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조용한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 예배의 시간
- 큐티의 시간
- 목장의 시간
- 홀로 말씀 앞에 있는 시간
Quiet Time은 단순한 조용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질문하고 말씀을 듣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잠잠하지 못하는 이유는 불안입니다
우리는 불안하기 때문에 계속 움직이고 말하고 사람을 찾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불행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타인의 마음을 모두 알아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잠잠한 시간 가운데 내 마음에서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네가 내 백성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잠잠하여 들으라”고 하신 뒤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순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모두 지켜서 백성이 된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주셨습니다.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먼저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은 백성에게 명령하십니다.
명령은 자녀가 되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말씀을 잘 지키면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시겠지.”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흐름은 반대입니다.
“너는 이미 내 백성이다.
그러므로 내 말씀을 들어라.”
명령은 구원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도록 하시는 초청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순종합니다
에발산 위에서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죄인임을 깨달았지만 바로 그곳에 번제단과 화목제단이 있습니다.
나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너는 내 자녀다.”
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들을 때 우리는 비로소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습니다.
“너희”의 말씀에서 “나”의 말씀으로
본문 1절에서는 백성 전체에게 명령하지만, 마지막 10절에서는 그 명령이 개인에게 다가옵니다.
설교에서는 이를
“너희”에게 주신 말씀에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고 설명합니다.
설교를 들으며
“저 사람이 들어야 할 말씀이다.”
라고 생각하는 데서 멈추면 안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이 나에게 무엇을 명령하시는지 들어야 합니다.
새 마음과 새 영으로 순종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하나님의 명령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잠잠히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어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우리가 말씀을 지킬 힘을 주십니다.
순종은 결국 인간의 강한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결과입니다.
적용 질문
- 내가 잠잠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제자리는 어디입니까?
- 하나님께 받은 분명한 명령은 무엇입니까?
- 지금 어기고 있는 명령은 무엇입니까?
- 오늘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잠잠히 듣고 있습니까?
-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확보한 조용한 시간은 언제입니까?
- 설교를 “너희에게” 주신 말씀으로만 듣습니까,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고 있습니까?
최종 정리
“명령하는 이 명령”을 지키는 세 가지 방법
1. 기록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기록해야 합니다.
내 사건과 감정과 죄를 말씀 앞에서 기록할 때 과거의 상처가 만들어낸 거짓 서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난이라는 석회 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함으로 새로운 인생의 기록을 써 내려가야 합니다.
2. 에발산 위에 세워야 합니다
말씀을 기록하면서 다른 사람의 죄가 아니라 먼저 나의 죄를 보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는 에발산 위의 죄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나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번제단과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화목제단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모난 돌 같은 죄인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모여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3. 잠잠하여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조용한 시간과 제자리가 필요합니다.
명령을 잘 지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에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 주시는 명령”으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어주실 때 비로소 사랑으로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핵심 문장
하나님의 명령이 어려운 것은
우리가 몰라서가 아니라 지키기 싫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명령하시는 이유는
죄와 상처로 왜곡된 우리의 삶을 다시 창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석회를 바르는 것은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함입니다.
말씀을 적용할 때
과거의 상처 위에 새로운 기록이 써지기 시작합니다.
말씀을 기록할수록
“나는 잘 지켰다”가 아니라
“나는 이 명령조차 지킬 수 없는 죄인이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에발산 위에서 내 죄를 볼 때
나를 대신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입니다.
하나님은 다듬어진 돌이 아니라
모나고 깨어진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받아 공동체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서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 사랑에 감격하여 순종합니다.
“너희에게” 주신 말씀을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기도 제목
하나님 아버지,
분명하게 “하라, 하지 마라, 지키라”고 말씀하시는데도 제 상처와 생각으로 말씀을 꼬아서 들었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귀로만 듣고 흘려보내지 않게 하시고 기록하며 묵상하게 하소서.
제 안에 오래 기록된 상처와 트라우마와 거짓 서사 위에 새 석회를 발라주시고, 하나님의 말씀과 적용으로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가게 하소서.
다른 사람을 에발산에 세워 정죄하면서 나 자신은 그리심산에 있다고 착각하지 않게 하시고, 제가 하나님의 명령조차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소서.
그 자리에서 나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나를 자녀로 받아주신 화목의 은혜를 바라보게 하소서.
내 옆의 모난 돌을 버리고 바꾸려고만 하지 않게 하시고, 서로의 깨어진 모습 그대로 모여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잠잠하여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시고, “너희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 주시는 명령으로 듣게 하소서.
제가 명령을 잘 지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셨음을 믿고, 그 사랑에 감격하여 순종하게 하소서.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어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오늘 주신 말씀을 삶에 적용하게 하소서.
석회를 바르고 기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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