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0 주일설교
Sungjin Jung
2026-05-11
조회수 3
두 귀가 울리리라
본문: 열왕기하 21:10-18
일시: 2026.05.10.(주일)
설교자: 김양재 목사님
본문 말씀
10절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여 이르시되
11절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도다
12절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3절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14절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들을 버려 그들의 원수의 손에 넘긴즉 그들이 모든 원수에게 노략거리와 겁탈거리가 되리니
15절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 하셨더라
16절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17절 므낫세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과 범한 죄는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8절 므낫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궁궐 동산 곧 웃사의 동산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서론
우리가 갑자기 큰 소리를 들으면 두 귀가 먹먹하잖아요. 일시적인 청력 손상이 오고 폭죽이 가까이서 터질 때, 콘서트장에서 스피커 가까이 섰을 때 그럴 수 있죠. 너무 큰 소리에 충격이 돼서 귀가 마비된 상태가 되는 거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그 정도 큰 소리로 우리에게 외친다고 하시네요.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고 하세요. 하나님은 왜 그렇게까지 외치셔야 할까요?
오늘 므낫세의 인생을 보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두 귀가 울릴 말씀을 주실까요?
1. 귀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10-12절)
여호와의 끊임없는 말씀
1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여 이르시되 (왕하 21:10)
늘 보는 말씀이지만 이 "말씀하여 이르시되"는 지금은 무게가 굉장해요. 지난 9절에 '유다 백성이 이방 민족보다 악행한 것이 더 심하였더'라 합니다. 우리 같으면 여기까지 하고 포기할 텐데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셨어요.
므낫세 시대 55년, 이사야와 미가는 지나갔고 예레미야와 스바냐는 아직 등장하기 전입니다. 유명한 선지자는 보이지 않아요. 왜죠? (므낫세가) 말씀이 안 들리니까 그와 소통이 되는 선지자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도 여호와는 그의 종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세요. 선지자들의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므낫세 시대는 예언이 끊이지를 않았다고 해요. 알아주지도 않는 모든 선지자들을 생각하니까 이제 막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므낫세의 죄목
그를 통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요? 11절입니다. (이건 좀 다 같이 읽으세요.)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도다 (왕하 21:11)
하나님은 므낫세의 죄목을 밝히세요.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은 우상숭배를 말하죠. 바알, 아세라, 일월 성신 등 온갖 잡신을 산꼭대기에서부터 성전 안까지 채웠어요. '유다 어떤 왕보다 (우상숭배가) 심했고, 심지어 예전에 가나안에 살던 아모리 사람들보다 더욱 심했다' 이 얘기가 자꾸 나옵니다.
아모리 족속의 의미
'아모리'가 누군가, 여러분 아시죠? 또 모르시죠?^^; 출애굽 당시 아모리 사람은 이스라엘이 마땅히 진멸시켜야 할 가나안 일곱 족속 중에 하나였어요.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그들과 불신 통혼을 아주 일삼았어요.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 족속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이 되었는데요.
창세기 15장 16절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여기 '돌아오리니' 이것도 유명한 '슈브'의 미완료 동사에요. 하나님은 끝까지 돌아오기를 원하세요. 그런데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차기까지 기다리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아모리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 누구나 회개하기를 끝없이 바라셔요.
아모리 족속은 민수기 21장에 보면 아모리 왕 시혼, 바산 왕 옥이 다 멸망하고, 여호수아 10장에서는 굴 속에 숨은 아모리 족속 다섯 명의 왕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지휘관들에게) 죽임당한 거 알죠? 그렇게 해서 다 죽었는데, 하나님이 아모리를 심판하시는 걸 보여주셨는데도 (북이스라엘이) 말을 안 들으니까 열왕기상 21장 26절에 보면 "그가(아합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함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은 앗수르에 의해서 나라(북이스라엘)가 완전히 망하게 하셨어요.
이것을 보고도 언약 백성인 남유다까지 아모리보다 더 심하게 합세를 해서 지금 우상을 섬겼다는 거예요. 가장 심하게 섬겼다는 거예요.
므낫세의 우상숭배와 백성
이 유다 중에서도 므낫세의 우상 숭배는 아주 브레이크가 없어요. 점점 악이 더 심해져 갔다는 것입니다. 왕이 이 지경이니까 그 백성들이 어떻게 되었겠어요?
지난주 9절에 봤듯이 "므낫세의 꾐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였더라"라고 했잖아요. 다윗의 후손 유다 왕으로서 있어서는 안 될 가증한 악이었죠. 지도자 한 사람의 우상숭배가 온 유다 백성을 우상숭배자로 물들인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를 범죄하게 한 죄가 므낫세에게 있어요.
재앙의 예고
이에 하나님은 어떻게 하세요? 12절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왕하 21:12)
"두 귀가 울리리라." 이게 (오늘 설교) 제목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을 온 나라가 배반하고 있는데 백성도 배반하고... 어떻게 하십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그 타락한 백성인 예루살렘과 유다의 이름을 다시 불러주시고 "내가 너희들의 하나님이야!!!!" 이러시는 거예요. "너희들 왜 그래?!!!" 외치시면서 말씀하세요.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재앙을 내리겠다"고 하세요. 이 표현은 여로보암에게 쓰였고 아합에게 쓰였어요. 여로보암과 아합이 누구예요? 다윗과 정반대에 있는 가장 악한 왕의 대표예요. 이게 무슨 뜻입니까? 북왕국을 무너뜨린 심판의 언어가 남유다 한복판으로 들어온 거예요. 그러니까 므낫세는 '남유다의 여로보암'이고 '남유다의 아합'인 거예요. 재앙을 몰고 온 임금, 그가 바로 므낫세예요.
"두 귀가 울리리라"의 의미
그런데 이 재앙이 얼마나 무서운지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고 하세요. 너무 너무너무 시끄러운 소리에 두 귀가 마비된 것처럼 먹먹해진다는 말이죠. 이 표현은 구약 전체에서 단 세 번 나와요. 사무엘상 3장에서 엘리 가문의 멸망을 예언할 때 "두 귀가 울리리라", 예레미야에서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할 때 '두 귀가 떨리니(모든 자의 귀가 떨리니, 렘 19:3).' 둘 다 세상을 충격과 공포로 흔든 멸망 사건이었어요. 므낫세의 우상숭배 결과가 이처럼 끔찍하리라는 경고의 말씀이에요.
그런데 주님은 이 무서운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미리 말씀하셨잖아요? 이게 놀라워요. 모든 선지자들을 동원해서 외치고 또 외치시는 거예요.
옛날에 뻥 튀기 장수가 기계가 터지기 전에 "뻥이요~!" 하며 미리 다 물러가게 하잖아요. 피하게 하고. 놀라지 말라고 미리 알려주는 거예요. 우리 주님이 지금 그렇게 하시는 것이라고요. 상상이 되세요?
귀를 틀어막고 있는 우리에게 "제발 좀 들으라고! 들어야 산다고! 안 들으면 두 귀가 먹을 만큼 큰 폭탄처럼 터지는 재앙을 내릴 거니까 그렇게 되지 말고!! 지금 귀를 들으라고 귀를 열고 들으라고!!!"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종들
여러분, 주변에 이렇게 외쳐주는 분들이 있습니까? 시끄러워서 귀를 막고 싶은 소리로 외쳐 주는 가족과 지체가 있어요?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종이고 모든 선지자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잔소리 외쳐 주는 아내 남편, 부모, 목자, 부목자, 목장 식구들, 사역자…… 이들이 오늘 여러분의 귀에 대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입입니다.
언제는 사역자들이 말씀이 안 들린다고 그러고 언제는 하나님의 입이라고 그러고 여러분, 정말 헷갈리시죠? 예, 이것도 저것도 다 사랑하는 말이니까 그렇게 들으시면 돼요. 그러니까 귀먹은 거 다 푸시고요. 귀를 여시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듣는 게 그분들을 향한 사랑이에요.
구속사적 관점에서 본 므낫세
그러면은 또 있잖아요. 구속사로 이제 므낫세를 또 생각해 봐야 하잖아요? 지중해 연안에 강원도 땅덩어리만 하게 이스라엘이 있는데 그 위에 무서운 강대국 앗수르가 있고 아래에는 그 유명한 애굽이 버티고 있어요. 그러니까 고래 싸움에 눌린 새우처럼 '위에 붙을까, 아래 붙을까' 두려워하면서 사는 것이 이스라엘 인생이에요.
히스기야가 종교 개혁을 하고 앗수르를 배척하기로 한 것도 히스기야가 굉장히 믿음이 좋아서라기보다도 앗수르가 바벨론 연합군에게 잠시 패배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때다 싶어서 반앗수르 동맹에 참여를 했어요. 열왕기하를 보면은 친앗수르(아하스) → 반앗수르(히스기야) → 친앗수르(므낫세) 이렇게 계속 나갑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친앗수르, 히스기야는 반앗수르로, 므낫세는 다시 태엽이 풀림같이 친앗수르를 한 거예요.
이것이 어떻게 믿음의 척도가 되냐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그러나 히스기야나 므낫세나 앗수르가 애굽을 치러 가려면 반드시 유다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거쳐 갈 수밖에 없으니까 늘 노심초사하는 거예요. 그 무서운 앗수르의 힘을 알기 때문이에요. 그걸 히스기야가 반앗수르를 해서 겨우 십 도 옮겨놓는 개혁을 했는데요. 므낫세가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12살이면 초등학교 6학년 정도인데요.
구속사의 신앙도 없고 므낫세의 통치 문제는 당장의 경제 아니겠어요? 경제. 모든 것의 끝에는 돈이 있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므낫세가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에요. 그걸 히스기야가 아무리 돌려놔도 히스기야가 없으니까 다시 죄인의 속성으로 다 돌아간 거예요. 그게 너무 편하잖아요. 원래대로 무서운 앗수르에 다시 빌붙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너무 이해되지 않아요? 우리는 '므낫세는 나쁜 놈!'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큐티가 안 되죠. 성경의 역사 이야기가 결국 인간 이야기예요. 나 자신과 가정과 이웃과 교회와 나라의 개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고 있어요. 히스기야도 얼마나 어려웠어요. 그걸 믿음도 없는 므낫세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적용 질문
Q. 두 귀가 울려서 말씀이 들렸던 사건이 있습니까?
Q. 지금 의도적으로 귀를 막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Q. 끊지 못해 점점 퍼지고 있는 우상은 무엇입니까?
2. 남은 자임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13-15절)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두 귀가 울릴 이 말씀을 주실까요? 첫째로 귀를 막고 있기 때문에. 두 번째는,
심판의 도구
13절이에요.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왕하 21:13)
줄과 추는 건축 도구예요. 크기, 수평과 수직을 재는 것이죠. 건물이 제대로 서 있기 위한 기준을 잡아주는 거예요. 근데 하나님은 이것을 심판의 도구로 쓰셨어요. 무너뜨리는 데 사용하셨어요. 사마리아의 죄, 아합의 집 죄를 정확하게 재서 맞지 않는 것을 전부 앗수르의 손으로 멸망시키셨어요.
그 심판을 이제 므낫세가 다스리는 예루살렘에도 베푸시겠다고 예고하십니다. "그러면 우린 달라! 우린 다윗 왕국이잖아! 하나님의 성전이 있잖아!!" 이런 확신 얘기 하나도 안 통하는 거고요. "그들도 설거지하듯 남김없이 씻어버린다! 흔적도 없이 지워버린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우리도 하나님이 빚으신 인생이에요. "Made by God" 이라고 딱 찍혀 있어요. 품질 보증된 것이죠. 믿으세요? 뭘 믿어요?^^; 그런데 그 보증 수표 믿고 아무거나 마구 담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가 "Made by God" 인데. 씻어 엎음 당하는 거예요. 열심히 담았던 것이 남김없이 비워지는 거예요.
남은 자를 버림
14절입니다.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들을 버려 그들의 원수의 손에 넘긴즉 그들이 모든 원수에게 노략거리와 겁탈거리가 되리니 (왕하 21:14)
'남은 자'는 심판 중에도 하나님이 은혜로 남겨두신 자예요. 북이스라엘이 망할 때 남유다가 남았어요. 앗수르가 유다를 칠 때도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남은 자를 두셨어요. 바벨론이 칠 때도 남은 자를 두셨어요. 남은 자는 기대할 수 없던 은혜를 받은 사람인 거예요.
그런데 이 남은 자들까지 하나님이 이제는 버린다고 하세요. 그들을 원수의 손에 넘긴다고 하세요. 남은 자가 더 이상 남은 자가 아니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 것이 더 이상 하나님 것 아니게 되는 거죠.
하나님의 진노
이런 엄청난 심판의 이유가 뭐예요? 15절입니다.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 하셨더라 (왕하 21:15)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 하셨더라" 남은 자들마저 심판받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어요. '하나님의 진노'가 뭡니까? 죄악을 응징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 표현이에요. 어떤 죄악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심판받는 거예요. 우리가 때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반드시 손을 보십니다. 그 대상이 하나님 백성이어도! 은혜로 남겨두신 자라도!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 남은 자들이 언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다고 하십니까? 므낫세 때만 아니에요. 10년 전, 20년 전도 아니에요. 아모리 족속을 봤듯이 출애굽부터 오늘까지 악을 행했다고 하세요. '출애굽'이 무슨 사건이에요?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신 사건이에요. 하나님이 보고 들으신 사건이고 돌보신 사건이에요. 자유를 주신 은혜예요.
그런데 바로 이 엄청난 은혜를 경험한 출애굽 1세대부터 지금 므낫세가 다스리는 때까지 약 700년의 시간 동안 하나님의 백성이 한 일은 '악을 행하고 행하고 또 행한 것이라!!' 이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남은 자임을 잊음
이게 무슨 뜻이에요? 내가 남은 자라는 것을 잊었다는 거예요. 은혜로 남겨진 자라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고 섬길 자유를 얻은 존재라는 거를 잊고 살았다는 거예요.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알았다면 어떻게 그 말씀을 그렇게 어길 수가 있었겠습니까! ★남겨주신 은혜, 살려주신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니까! 인생의 그릇에 거짓과 음란과 미움과 탐욕과 질투와 불평을 막 쓸어 담는 거예요. 남은 자임을 잊고 사니까 하나님 아닌 피조물을 우상으로 섬기며 사는 거예요.
여러분, 이 '남은 자'가 바로 우리들이에요. ★은혜받은 그 순간부터 우리는 그 은혜를 잊어버려요. 예배드리다가도 불편한 게 생기고 불현듯 머릿속에 뭔가 떠오르면 내 마음에 온갖 악을 쌓는 거예요. 그러다 말로 행동으로 나오기까지 합니다. 이게 다 출애굽부터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악이에요.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시는 죄인 거예요.
남은 자임을 기억하라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두 귀가 울리도록 말씀하시는 거예요. 소리 지르세요. 야단치세요. 제발 좀 들으라고!! 므낫세가 안 듣잖아요. 안 듣는데 권력이 있으니까 이렇게 백성을 죄로 인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깨어나라고! 돌아서라고! 은혜를 생각하라고!! 날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이 자유를 잊지 말라고! 우리 인생이 남겨진 인생임을 기억해야 돼요.
환경이 '남겨진 환경' 되면 그래도 생각을 좀 할 텐데요. '남겨진 환경'이 아니라 선발되고 높아지고 인정받는 환경이 되니까 '남은 자'라는 걸 자꾸 잊어버리는 거예요. 그런 환경을 원하고 바라며 사니까 남겨주신 은혜를 잊어버리는 거예요. ★우리는 '선발된 인생'이 아니라 '남겨진 인생'이에요. ★'자랑할 인생'이 아니라 '회개할 인생'이에요.
그러니 심판의 말씀이 들릴 때! 듣기 싫은 말씀을 자꾸 외쳐줄 때! 귀를 막지 마시고 남겨주신 은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적용 질문
Q. 내 인생이 'Made by God [메이드 바이 갓]'임을 믿으십니까? 가장 귀한 그릇임을 믿으세요?
Q. 인생 그릇에 무엇을 담고 있습니까? 끊임없이 습관적으로 쓸어 담는 악은 없습니까?
Q. 잊지 말고, 날마다 기억해야 할 은혜는 무엇입니까?
3. 죄만 남기기 때문입니다 (16-18절)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두 귀가 울릴 말씀을 주실까요? 첫째 귀를 막고 있기 때문에 두 번째는 남은 자임을 잊었기 때문에. 세 번째는,
큰 소리로 외쳐요. 우리 안에 죄밖에 남겨진 게 없어요.
무죄한 자의 피
16절입니다.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왕하 21:16)
하나님은 므낫세의 죄악에 대해 이미 충분히 밝히셨어요.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어요. 또 말해야 할 게 남았어요. 뭡니까?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렸다"는 거예요. 우상만 섬기는 게 아니고 예루살렘을 동에서 서까지, 남에서 북까지 무고한 피로 가득 채웠다는 거예요.
백성을 살려야 할 왕의 자리를 의인의 피로 물들인 거예요. 살인을 했다는 뜻이죠. 유대 전승에 따르면 므낫세가 살해한 무죄한 자 중에 누가 있었는지 아세요? 히브리서 11장에 그 믿음의 순교를 열거하면서 톱으로 켜는 게 나오는데, 이게 이사야라고 그래요. 므낫세가 이사야를 나무 톱으로 켜서 죽였다고 해요.
이사야의 순교인데 성군 아버지의 영적 스승인데, 심지어 하나님의 종인데, 게다가 장인인데, 그런 선지자를 이렇게 잔인하게 죽인 게 바로 므낫세란 말입니다. 이미 저지른 죄보다 더한 죄를 쌓아 올린 거예요.
우상숭배의 파괴력
이 파괴력은 결국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뜨립니다. 빠뜨려요. 이게 바로 독재로 이어지는 거죠. 그 끝은 아무나 자신이 원하면 죽이는 거예요. 므낫세를 비롯해 모든 독재자가 간 길이에요.
그러니까 독재는 결국 살육으로 변하는 거죠. 이게 바로 '우상숭배의 파괴력'이에요. 저 멀리 산꼭대기에 있으니 괜찮다고 여기며 시작했는데 어느덧 가장 거룩한 성전 안으로 들어와요. 남몰래 혼자 즐기는 일이라며 끊지 않았는데 어느덧 자녀가 따라 하고 손주에게 이어지고 우리 집 안에서 끝날 줄 알았는데 이웃으로 공동체로 나라로 전염이 되는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가 그 증거 아니겠습니까?
낙태와 인권법의 문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이 지난 금요일 5월 7일 예정된 <스타인웨이 피아노 기부 감사 연주회>에, 그걸 기부한 사람의 남편이 '세상의 모든 낙태된 아이들을 위한 헌정곡'을 프로그램으로 올렸어요. 그 사람이 직접 작곡한 곡으로 직접 연주할 예정이었어요. 근데 그 이유가 낙태로 세상을 떠난 모든 무고한 생명을 묵상하며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어요. 근데 그 프로그램 노트를 보고 "임신 중단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낙인을 찍는다"는 학생들의 항의에 따라 이 프로그램이 삭제됐다는 거예요.
2019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잖아요. 그러니까 2021년부터 낙태죄는 법적 효력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거죠. 여러분, 이렇게 낙태죄가 한번 통과되니까, 법이 이렇게 무서운 거예요. 차별금지법 또한 통과되면 똑같이, "법이 그러니까 우리는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다! (반대하면) 안 된다!" 정말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좀 다 따라 해봐요.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할 게 기도밖에 없어요.
이런 것이 자유와 권리가 아니죠. 여러분, 여성 인권이 중요하지만, 여성 인권만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수 인권이 중요하지만, 소수 인권만 중요한 것이 아니죠. 근데 인권법이 자꾸 제정되면 이제 어느덧 자유가 제한되고 권리도 빼앗기게 되는 거예요. 오늘 '무죄한 자의 피'라고 했는데 여기 태아가 포함되는 것 아니겠어요? 태아는 생명이 아닌가요?
그러니까 '태아생명보호법' 이거라도 제정되어야 하고 차별금지법, 악법은 막아야 되는 거예요. 다음 세대의 가치관이 이 므낫세처럼 될까 봐 너무 무서운 거예요. 두려운 거예요.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기도가 그냥 안 나올 수가 없어요.
불행한 지도자
그러니 누가 므낫세를 향해 "NO!!" 할 수 있었겠어요? 무조건 지금 "예스" 할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막 칭송하고 찬양하고 복종할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 보시기에 참... 그 낙태가 얼마나 끔찍한 악이에요? 그런데 세상에서는 찬양받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렇게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므낫세가 부러우신가요? 므낫세처럼 되고 싶으신가요? 그래서 정말 불행한 지도자는 아무도 "아니오."라고 말해주지 않는 지도자예요. 비난을 하나님의 책망으로 달게 듣고 회개하는 사람이 바른 지도자입니다. 싫은 소리를 잘 들어내야 돼요.
왕정의 필연적 결과
그런데 이것도 생각해 봐야 돼요.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400년 지나고 광야를 지나면서 하나님 없이 살 수가 없으니까 모세의 계명을 지켜서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왜죠? 저절로 겸손해졌잖아요. 근데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이 끝나고 사무엘서에 들어가니까 먹고살 만해졌잖아요. "우리도 왕을 달라!" 하나님 왕이 있는데 "인간의 왕을 달라!" 배부르고 등이 따시면 필요한 것들이 많아져요.
"왕은 너희를 압제하고 착취할 거다." 그래도 "아니, 우리도 왕이 있어야 돼요!" 기도 제목을 가지고 응답해 주니까, 돈이 생기니까, "아이가 대학을 가야 되겠어요! 암도 고쳐주세요!" 인간 왕을 구하는 것은.. 맨날 인간의 원하는 것들을 달라고 떼 부리는 기도를 하니까 호세아 13장 11절에 "내가 분노함으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함으로 패하였노라" 여러분 이렇게 응답하시는 기도 응답도 있어요.
근데 이렇게 미리 말씀하셨으니까 왕정이 시작됐을 때는 망할 수밖에 없는 결과는 필연인 거예요. 하나님이 망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금보다 더 귀한 기도예요. 광야는 말씀이 꿀송이로 들리는데 부요해지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싫은데 인간의 싫은 소리를 어떻게 듣겠어요? 전혀 못 들어요.
부자 청년도 "네 재물로 가난한 사람 도와주라!"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불편해하면서 떠났잖아요? 예수님도 불편한데 사람의 말은 어찌 듣겠습니까?
사과와 회개
참으로 남자들이 사과를 못 해요. 우리나라는 특히 유교가 강하기 때문에 사과를 못 해요. "당신이 옳다" 이 고백은 내 죄를 보기 전에는 정말 말할 수 없는 가치관이에요. 남자들은 사과 안 해요. 사과 안 해요.^^;;
그런데 그 이스라엘- 북 왕국, 남 왕국 다- 그 왕들 중에서 딱 사과한 왕이 하나 있는데 다윗이 있죠. 사무엘하 12장 13절에 다윗왕이 나단의 책망에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 고백했어요. 그러니까 그 어려운 죄를 고백하니까 그 한 절에 즉시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이다" 하신 것이 바로 방향을 주님께 돌리니까 여호와가 "내 종 다윗!"이라고 기뻐하신 근거가 되는 거예요.
그냥 "내 종 다윗!"이라 기뻐하신 근거가 오직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런 사과의 고백이었던 거예요.
왕이 되면 자기 죄를 보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든 건데 다윗이 그 고백을 했어요. 어느 나라 왕이 "폐하! 그렇게 독재하시면 안 됩니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습니다."라고 간언하는 부하의 말을 듣고 "네 말이 맞다. 내가 잘못했다." 할 왕이 있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조금이라도 부요하면 목장에서 부부 관계에서 양육을 못 받아내요. 싫은 소리를 못 들어요. 하나님은 특출한 왕들을 칭찬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야단을 잘 맞은 다윗을 최고의 왕으로 인정하십니다.
야곱의 아들 중에서도 탁월한 르우벤이 아니라! 너무도 수고한 요셉이 아니라! 며느리하고 동침한 유다!! 유다가 며느리 보고 "당신이 나보다 옳도다." 죄를 고백하고 사과한 거죠. 그런데 하나님은 이 유다와 다윗을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올려놓으신 거예요. 이 두 사람이 고백한 결정적인 구절이 성경에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죄인임을 고백하라
저 또한 여자라서가 아니라 구속사의 가치관으로 "당신이 옳아요." 이걸 비교적 쉽게 하니까 우리들 교회가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내가 다른 게 뭐가 있겠어요? 근데 그걸 다 못하더라고요. "그러게요. 당신이 옳습니다. 제가 잘못했네요." 이걸 못하더라고요.
★사람이 부요할 때는 인간에 대해서 몰라요. 인간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은 죄에 대해서 모른다는 거예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잖아요. 이게 사막의 교부들이 얘기한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죽으면 죽었지 난 사과 못 해!"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잖아요. 그죠? 그러나 안 깨달아지니까 그걸 못하죠.
우리 다 같이 "내가 죄인이에요" 다 외쳐봅시다. 시작!! "내가 죄인이에요." 더 큰 소리로!! "내가 죄인이에요." 이렇게 고백하기 싫은 사람은 가서 회개하세요!! 그래서 이번 주일에 이렇게 "내가 죄인이다!!" 이거를 고백하라고. 아니 여자들이 하는데 남자들은 왜 못해요? 또 남자들도 하는데 안 하는 여자는 뭐예요? 진짜 이거면은 문제가 다 해결되는 거예요.
므낫세의 기록
그러니 가장 긴 시간 왕좌에 앉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이 므낫세의 통치를 성경은 어떻게 기록합니까? 17절이에요.
므낫세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과 범한 죄는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왕하 21:17)
55년 동안 므낫세가 한 일이 많겠죠. 근데 그런 거 열왕기 기자는 기록하지 않아요. '남은 사적, 행한 모든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대신 업적 목록에서 뺄 수 없는 게 뭐예요? '범한 죄'예요. "므낫세 = 죄"라는 거예요. 그 오랜 세월 왕으로 살면서 남긴 거라고 '죄'뿐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므낫세만 그러겠어요? 살면서 죄만 남기는 것은 므낫세만이 아니고요. 므낫세처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높은 자리에 오래 앉아 있으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도 똑같습니다. 이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 누가 있겠어요? 모든 인생의 욕심이에요. 그냥 하나님 자리에 내가 앉는 거예요. 가장 위험한 우상은 바로 '내 자신'이에요. 항상 이렇게 교회에서 섬겨도 다 높은 자리만 원해요. 사회에서도 높은 자리만 원해요. 내가 내 자신이 우상이에요.
므낫세는 잘살아보겠다고 얼마나 앗수르에게 잘 비볐으면 55년이나 장기 집권을 했겠어요. 그걸 생각해 보세요. 그죠? 그러니까 정치를 잘한 왕이에요. 근데 모든 백성이 똑같은 욕심을 갖고 있으니까 "므낫세! 므낫세!" 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어떤 환경에 있든지 어떤 모습으로 살든지 죄만 남길 수밖에 없어요. 죄인인데 죄 아니면 또 뭘 남기겠어요? 우리 힘으로 남기는 건 죄밖에 없어요.
그런데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보다 더 나아" 이딴 얘기 좀 하지 마세요! 아직도 우리가 행위로 판단하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므낫세의 최후는 죽음의 심판뿐이겠죠.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므낫세의 회개 (역대하 33장)
하지만요. 히스기야의 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았어요. 반전이 있어요. 병행 본문인 역대하 33장을 보면 놀라운 말씀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므낫세가 귀를 막고 듣지 않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럼 어떻게 하시느냐? 역대하 33장 1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대하 33:11)
드디어 망하는 사건이 왔어요. 그렇게 내가 빌붙었던 앗수르의 침략을 받았어요. 게다가 그들에게 사로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갔어요. 포로가 된 거예요. 앞서 14절에 "노략거리가 되리라" 하는 말씀이 므낫세에게 벌써 이루어졌고요.
근데 이상하게 앗수르로 끌려갔다고 하지 않고 바벨론으로 갔다고 하네요. 물론 당시 앗수르가 바벨론 지역까지 통치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히스기야에게 "바벨론 환관이 되리라" 했잖아요. 이 말씀을 60년 전에 벌써 예행연습을 므낫세가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이 유다가 망하면서 바벨론 포로로 온 백성이 다 끌려가잖아요. 그 시작을 므낫세가 한 거예요. 그의 죄악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에요.
드디어 해달별이 떨어지는 사건이 므낫세에게 임했어요. 이 해달별 떨어지는 사건에서 므낫세는 어떻게 행했을까요? 12절 13절이에요.
12절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13a절 기도하였으므로 .... (대하 33:12-13a)
어떻게 생각해요? 훌륭한 아버지 히스기야도 무시하고 하나님 무서운 줄도 모르던 므낫세인데 인생 기반이 무너지는 환난을 당하니까 하나님을 찾네요. 크게 겸손하네요. 기도하네요. 50년 동안 꼿꼿이 세웠던 목을 꺾고 하나님께 항복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 기도를 받으셨어요.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시고 왕위를 회복시키셨어요. 그제야 므낫세는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 알았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50년... 말 안 듣는 아이 때문에 50년 속을 끓이셨는데 그냥 이렇게 끌려가니까-쇠사슬로 끌려가니까- 마지막 순간이라도 항복하고 회개하면 영접해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등지고 자기 마음대로 살던 50년이 복일까요? 모든 것을 잃었지만 하나님께 항복하고 하나님 품에 안긴 그 잠깐이 복일까요? 그 50년은 죽음과 함께 끝나지만, 그 짧은 시간은 죽음 이후 영원히 이어질 진정한 복인 거예요. '50년'은 '영원'에 비하면 순간으로 끝나는 거예요.
므낫세의 죽음과 족보
그래서 므낫세는 다른 유다 왕들처럼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예루살렘에 묻힐 수 있었어요. 18절입니다.
므낫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궁궐 동산 곧 웃사의 동산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왕하 21:18)
므낫세는 다윗의 이름이 있는 왕의 무덤에 묻히지 못했어요. 회개했지만 그 악행에 대해서는 져야 할 책임이 있다는 거예요. 다윗이 밧세바와의 사이에 아이를 위해 기도했어도 아이는 죽었어요. 죄는 용서하셨지만은 죄의 값은 치러야 하는 거예요. 그러면 죽은 것은 하나님의 응답인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 왕조가 이어지게 하셨잖아요. 므낫세도 마찬가지로 죄의 책임을 물으셨지만 마태복음 예수님의 족보에는 이름이 올라가게 하십니다. 정말로 분에 넘치는 구속사의 은혜예요.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은 왜 이런 은혜를 주십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구속사를 이어가시는 신실하심 때문이에요.
신실하신 하나님이 므낫세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악하고 악한 므낫세도 구원을 받는 것이고요. 유다가 멸망한 뒤에도 다윗의 계보가 이어지는 것이고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시는 것이고, 저와 여러분도 그 믿음의 계보에 이름이 올라간 것입니다!
적용 질문
Q. 내 우상 때문에 피눈물 흘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Q. 주변에 "예" 하는 사람만 있습니까, "아니오" 외쳐 주는 사람도 있습니까?
Q. 지금까지 내 인생을 한 단어로 기록한다면 무엇입니까?
결론
하나님의 이 끈질긴 사랑으로 오늘도 우리 두 귀를 울리는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기록된 말씀만으로는 듣지를 않으니 외치는 선지자를 통해 찾아오시는데, 그 외침도 듣지 않으니 힘든 사람과 사건으로 쇠사슬에 끌려가는 이 환난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귓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있다면 두 귀를 쫑긋 세우시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여시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졸던 목자님은 깨시기 바라고(--;)
말씀이 들리면 어떻게 해야 해요? 므낫세가 '크게 겸손했다'고 하잖아요. 항복해야 해요. 내 뜻, 내 생각, 내 감정 다 내려놓고 "주님 말씀이 100% 옳으세요" 인정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여러분 가장 큰 겸손을 보이신 분이 누구세요? 바로 우리 예수님이시죠!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항복하신 최고의 겸손의 사건이에요. 이것이 우리를 살리는 울림입니다. 구원의 울림! 사명의 울림!입니다. 이런 울림을 받을 때 므낫세 같은 우리도 구속사를 써 내려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찬양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새찬송가 290장 (통일 412장)
1절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주님은 여전히 날 부르시네
그 자비로우신 주님의 음성 내 귀에 쟁쟁히 들려오네
2절
주님은 언제나 날 기다리며 인자한 손길을 내미시네
그 귀한 사랑은 변함 없으니 내 마음 평안히 쉬리로다
3절
우리가 범죄해 주 떠났어도 주님은 사랑을 베푸시네
그 크신 은혜는 끝이 없으니 영원히 주님을 찬양하리
[후렴]
괴로운 세상에 살 동안에 그 평화 변함이 없겠네
기도 제목
- 주님의 말씀을 귀를 열고 좀 듣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 내가 남은 자임을 잊지 않게 해달라고
- 내 죄를 보며 "내가 죄인입니다"를 외치게 해달라고
- 특별히 다음 세대를 위하여 불신결혼은 총체적인 악이에요
- 내 자녀, 남의 자녀, 우리나라, 우리 교회 다 위해서 주님 부르고 기도합니다!
날짜: 2026.05.10.(주일)
본문: 열왕기하 21:10-18
제목: 두 귀가 울리리라
설교자: 김양재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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